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봉오동 전투 (문단 편집) === 삼둔자 전투 === > 삼둔자 전투의 규모를 살펴보면 <독립운동사>[* 1975년 발행한 독립운동사 제5권을 말함]에는 "5, 6일동안 있었던 두 차례의 싸움(삼둔자전투와 안산전투 - 저자)에서 독립군은 적병 1백 20여 명을 사살했다"라고 적혀 있다. > 두 차례 전투에서 1백 20명을 사살했다고 하니 삼둔자 전투 한 차례만으로는 얼마나 되겠는가? 절반이라면 60명, 3분의 1이라 해도 40명가량 된다. 당시 강양동 습격전에 동원되었던 독립군이 모두 40명이었는데 상대적으로 우세한 병력과 접전하여 아군의 병력만큼 적을 소멸한다는 것은 대단한 고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투 문제를 둘러싸고 안화춘 선생이 수차 조사 방문하여도 이런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낼 수는 없었다'''. 필자 역시 안화춘 선생의 아래와 같은 판단에 동의하는 바이다. > "1백 50명을 소멸했다는 봉오동 전투를 당시 <독립신문>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반면 그보다도 앞서 1백 20여 명을 설멸했다는 삼둔자 전투는 크게 알려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전투는 소수 병력의 접전으로서 섬멸전이 아니고 쌍방 간의 사격전 후에 삼둔자 북방으로 퇴각한 전투'''로 판단된다." >---- >강룡권, 『동북항일운동유적답사기』, 연변인민출판사, 259~26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